걸어온 길  칼럼
 

[칼럼] 시대와 함께한 법학자의 길 - 법률저널 2014년 07월 04일 (금)

성낙인 | 2014.07.08 07:06 | 조회 2180
법학의 길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난삽한 법률 용어 예컨대 하자(瑕疵)·해태((懈怠)는 무슨 외계에서 온 것처럼 생소하기 마련이다. 요즈음 보니까 해태는 아예 한글 한자 변환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더구나 모든 법령과 교과서는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교과서는 아직도 종서(縱書)가 태반이었다.

국가사회 또한 혼돈의 연속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는 3선개헌으로부터 전태열 열사의 분신을 거쳐 마침내 종신 집권이 가능한 유신에 이르는 동안에 대학도 온전할 수가 없었다. 데모와 휴교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정상적인 학업이 불가능했다. 3선개헌 때는 5월 초에 휴교한 이후에 10월 중순에 1학기를 새로 개학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은 무산되고 5·18과 더불어 대학은 휴교와 더불어 군인들이 진주하였다. 초임 교수였던 나는 교직원 스쿨버스로 출근하는 과정에서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아니하다고 해서 정문에서 하차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대학 교수가 된들 우선 자신의 연구실을 독자적으로 가지지 못했다. 어떻게 외국 가는 교수가 있으면 다행히 독자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에어컨은커녕 겨울에는 연탄난로를 직접 갈아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번개탄도 없었으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연구를 할 수 있는 책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예나 지금이나 박봉인 교수 월급에서 명동에 있는 ‘소피아’라는 외국 서점에서 책을 사는 날이면 식구 눈치를 보기 마련이었다. 외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학문적 우월성을 과시하기에 충분하였다. 외국에서 수학한 교수님들도 드물디 드물었지만 그 분들인들 서가에 꽂힌 책이 별로 없었다. 사연은 간단하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에 원서를 사야하는데 유학생인들 원서살 돈이 없기 때문에 귀국해서도 서가가 찰 리가 만무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외국 유학했다면서 변변한 원서조차 구비하지 못한 교수님을 향해서 혹시 가짜 박사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대학을 갓 나올 시점에 수출 붐이 일어났다. 지금은 사라져서 이름만 남았지만 대우그룹은 그 때 명동에서 막 시작한 한성실업이 모태이다. 그 한성실업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재벌기업 반열에 오르지 않았던가. 70년대 후반에는 중동 건설 붐으로 노다지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 때 짧은 영어라도 구사하는 이들은 모두 종합무역상사로 내몰렸다. 그런데 뜬금없이 시대 조류를 외면하고 대학인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어쩌면 한심하기 그지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욕은 교차하는 법인 듯 1997년에 들이닥친 IMF체제는 겨우 고생길을 끝내고 기업의 별인 임원에 오른 이들의 대량해고로 이어졌다.

엄혹한 학창생활을 지나 젊은 나이에 대학 강단에 서서 일생을 보내다가 이제 공식적으로는 대학의 문을 나서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다. 그 사이 대한민국 자체가 통째로 변화해 왔다.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서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48년 제헌 이후 열 번째 헌법인 1987년 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이 춤추는 그야말로 헌정의 불안정시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제 87년 체제는 사반세기를 훌쩍 넘어서서 헌정의 안정을 구가한다. 산업화의 성공에 이어 두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민주화의 안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에서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것이다. 동시대에 이와 같은 엄청난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이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 국민뿐일 것이다.

이제 혼돈의 반세기를 거쳐서 미래로 세계로 향하는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덕분에 대학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서울대학교만 하더라도 1975년 관악으로 이전하여 제2의 비약을 거듭해 왔다. 초임 교수시절 꿈에도 그리던 냉난방 연구실이 작동된다. 도서관과 강의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외형이 아니라 내실을 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내실은 학문적 성숙뿐 아니라 인간적 성찰을 함께해야 한다. 학문공동체에서 지성 못지않게 덕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 인간성 회복과 인간존엄성의 구현을 통해서 선(善)한 의지를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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