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  칼럼
 

[칼럼] 영욕에 휩싸인 ‘관피아’ - 법률저널 2014년 06월 05일 (목)

성낙인 | 2014.06.09 20:08 | 조회 1937
시대의 화두는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쫒아가야 헸던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대한 가치 판단보다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게 최대의 가치요 명제였다. 그러기에 성숙한 자본주의, 민주법치주의와 같은 단어는 사치에 불과하고 오히려 금기시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산업화에 기반한 민주화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은 단계에 접어들면서 나라 곳곳에 쌓여 있던 적폐(積弊)가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 이르러서는 온 나라에 깔려있던 제도와 시스템이 통째로 비정상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침내 관료에 대한 불신은 국가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름하여 ‘관피아’, 이탈리아의 마피아를 빗댄 ‘관피아’는 그 이전에 관료집단의 핵으로 치부되던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에 대한 ‘모피아’가 이제는 전체 관료집단을 싸잡아 ‘관피아’로 폄하된다. 여기에 더하여 총리 후보자의 사퇴를 야기한 법조계의 뿌리 깊은 전관예우 논란까지 겹치면서 ‘법피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그간 고시제도를 통해서 형성된 고위공직으로의 진입과 출세라는 방정식에 크게 의존해 왔다. 멀리는 조선시대의 과거를 연상하게 하고 가까이는 일제시대 고등문관시험과 유사한 고시제도는 새로운 인재 탄생의 등용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등고시 시절에 사법과에 합격하면 전국에 불과 200여명에 불과한 판사나 검사가 된다. 말이 자격시험이지 오로지 판·검사에 필요한 숫자만 충원하기 때문에 변호사는 드물디 드물기 때문에 고시합격만하면 평생을 보장받은 셈이다. 고등고시 행정과도 예외는 아니다. 요즈음은 사무관이 시청 계장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곧바로 군수로 발령났으니 지금 보아도 여간 출세가 아니다.

일류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변변한 기업이 없던 시절에 엘리트들은 고시로 집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최고의 엘리트들은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한 것도 사실이다. 고시 엘리트들은 좋게 말하자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초석을 이루었다고 평가해도 결코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관료들의 자질과 사명도 바뀌고 있다. 공직에로 내몰리던 엘리트들은 이제 거대 기업의 사직(私職)으로 모여들고 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거대 기업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더불어 공직에서 얻을 수 없는 수준의 부(富)도 함께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의 자질도 이제 사기업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공직자들의 사명과 자부심도 예전 같지 못하다. 예전에는 공직 재임기간 동안에 청렴하게 살더라도 퇴임 후 연봉 수 억 원하는 좋은 직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큰 아쉬움 없이 공직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부도 명예도 함께 누릴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세종시 근무라는 악재까지 겹쳐서 공무원의 잔치 시대는 끝났다는 조소까지 흘러나온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 척결의 한 방안으로서 고시를 통한 고위공직자 충원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그런 극약처방을 내 놓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면서도 과연 그 길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구심 또한 지울 수 없다. 사실 이미 전문직 분야에는 고시를 통한 충원보다는 박사급 인력을 더 많이 충원하고 있다. 문제는 조화에 있다. 스펙 좋은 전문직 출신을 공직에 대폭 진입시키는 작업은 긴요하다. 그런데 스펙 쌓기는 그야말로 돈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유학은 기본이고 갖가지 사치스러운 과제들을 수행해야 한다. 어쩌면 돈 없고 빽 없는 젊은이가 독학으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진입로가 고시 제도이다. 그들의 성공이 축복받아야 하겠지만 그들의 자만이 오늘의 불행을 자초하지 않았는지도 성찰해 보아야 한다.

21세기적인 다원화 사회에서는 어느 극단의 선택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와 제도의 조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관료제의 폐해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동시에 그 틈을 채우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엽관제의 우려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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