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일부 법관들의 일탈행동에 대해서 이와 같은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법관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매우 높다는 점도 영향이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대법원장을 포함한 전국의 법관이 불과 5백 명 남짓했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대법원장도 초임 법관의 신상명세를 자세히 알 정도였다. 하지만 법관 숫자가 3천명에 육박하는 오늘날 이들 모두가 성인군자이길 바라기는 하지만 몇 명의 일탈은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명제에만 안주하여 법관에 대한 자체 정화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법관이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퇴직하게 할 수 있다”(헌법 제106조). 헌법이 이와 같이 법관의 재판과 신분에 있어서 강력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법원과 법관의 독립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장인 총장도 헌법상 명시된 탄핵대상이 아닌데 법관만은 초임 법관도 탄핵심판의 대상으로 규정한 헌법의 취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법관들이 그 독립성을 자신만의 유아독존적 성체를 구축하는 독립성으로 곡해하여 사법부 독립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10년차 법관의 재임용에 탈락한 법관이 유사 이래 5명밖에 되지 않는다. 다수의 법관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퇴직함에도 불구하고 사표수리만으로 그만이다. 변호사협회도 물렁하기는 마찬가지다. 비리 법관으로 물러나도 공식적인 징계가 내려지지 않는 한 변호사등록에는 큰 문제가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처음 도입당시에는 논쟁적이었지만 이제 법관 재임용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물론 그 재임용제도의 엄격한 설계에는 반드시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법관에 대한 평가와 징계가 베일 속에 가려져서는 아니 된다. 법관에 대해서도 이제 공개적인 검증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 점에서 초기에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던 변호사협회의 법관의 재판 태도나 진행능력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비행 판사가 내린 판결, 무능력한 판사가 내린 판결에 국민들은 승복하기 어렵다.
로스쿨의 도입과 더불어 향후 법관은 법조인으로서의 상당기간 실무경력을 갖춘 사람에 한하여 등용된다. 대법원이 제시한 로드맵에 따르면 현재 로스쿨 재학생들은 졸업 후 10년이 지나야 법관이 될 수 있다. 법학교육뿐 아니라 법관임용제도도 미국식으로 전환된다. 평생 직업으로서의 법관이 아니라 사회에서 존경받는 원로로서의 법관제도가 어떠한 모습으로 정착될 것인지는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사법부가 젊고 때 묻지 않은 엘리트의 성체로 그 존립의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청년기를 속세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살아온 노회한 법률가들의 법관 진출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